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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 갔다 왔다...

Sth Btwn Us 2014. 6. 29. 23:07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남한산성에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산성역에서 내린 다음에 버스를 탔다. 남한산성까지 가는 버스는 52번, 9번 버스가 있었다. 52번 버스는 배차 간격이 25분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9번 버스를 탔는데 완전 돌아가는 코스였다. 산성역 입구에서 큰 원을 돌고 산성역으로 다시 돌아와서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그런 경로였다. 


  버스 안에는 남한산성을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아크테릭스Arc'teryx로 처바른 아줌마부터 청바지에 티한 장 입은 학생까지 다양했다. 남한산성 올라가는 길은 구절양장처럼 꼬불꼬불 아슬아슬했다. 길도 좁은데 차까지 막혔다. 아마 세계문화유산 등재 소식을 듣고 '도대체 남한산성이 뭐길래...?' 하는 사람들이 죄다 차 끌고 나온 것 같았다. 정유사의 음모 및 담합으로 기름값이 떨어지지 않는 나라인데 주말에 이렇게 차를 다 끌고 나오는 것 보면 다들 먹고 살만한가 싶었다. 


  구불구불한 길 오른쪽에는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었다. 이렇게 차를 타고 낭떠러지가 있는 좁다란 길을 가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한다. '브레이크가 갑자가 고장나면 어떡하지?', '혹시 낭떠러지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 말이다. 이런 상황이 두렵다는 게 아니고, 이런 상황이 오게 되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사고思考실험'을 해보곤 한다. 브레이크가 고장났을 때는 그냥 갓길로 차를 박는 게 최선이다. 버스가 굴러 떨어졌을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가장 덜 다칠까 생각해보면 답이 잘 안 나온다. 이런 저런 망상을 하다보니 어느새 종점인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차들로 꽉 차 있었고, 종점 인근 땅들은 관광식당으로 꽉 차 있었다. 물론 인도와 도로는 남녀노소로 꽉 차 있었다.많이들 놀러 온 것 같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지, 아니면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이렇게 많아진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남한산성 온 김에 행궁도 한 번 가 보자' 하고 표를 끊었다. 2,000원이었다. 입구인 한남루漢南樓 를 지나서 행궁 안으로 들어갔다. 왕이 행차해서 공식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라는 외행전外行殿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일장각日長閣. 광주유수(광주에 두었던 정이품의 관직)가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저기 앉아서 안동소주 병나발 부는 광주유수를 생각해보니 웃겼다.



  내행전內行殿 뒤 쪽에는 이위정以威亭 이 있는데 거기 있는 후원이다. 여름에 이위정에 앉아서 수박 잘라 먹으면서 낮잠 한 숨 때리면 이만한 풍류가 없을 듯 싶다. 이런 왕이라면 할 만 할 듯 싶었다.



  재덕당在德堂 옆에 있는 엄청나게 큰 나무. 정말 멋있었다. 족히 삼사백년을 됐을 법한 나무였다. 



  상궐 남행각. 나는 이렇게 좁다란 길이 왠지 모르게 좋다. 은밀한 맛이 있다고 그래야 하나... 마치 내가 달밤에 왕의 여자인 궁녀와 밀회를 즐기는 성균관 학사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이런 곳을 지나가게 되면 왠지 모르게 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누가 훔쳐보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하다. 남들한테 들킬락말락하는 짜릿함이란.....


  '행궁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을 잡고 나왔다. 본격적으로 남한산성을 오르기로 했다.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에서 나왔던 수어장대守禦將臺를 목표로 길 따라 올라갔다.



남한산성 북문. 이런 석조 건축물을 보면 도대체 저렇게 큰 돌을 어디서 구해서 어떻게 날라서 저 성곽과 문을 세웠는지 궁금하다. 모양과 크기가 같은 돌이 하나도 없는데 그걸 쌓아서 성을 만든다니... 



북문 위에 올라가면 성곽을 따라 나 있는 길이다. 힘들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북문에서 출발해서 한 20분 정도 걸으니 수어장대에 도착했다.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고 토마토도 좋았다. 수어장대 1층 마루에 드러누워서 낮잠 한 숨 때릴까도 했는데, 꿈에 조상님 나올까봐 참았다.



  내려가면서 찍은 이름모를 야생화.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이 꽃에서 나는 향기가 숲을 가득 메웠다. 중간에 웨지힐을 신고 산을 타는 여자를 봤는데 남자친구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불쌍해 보였다. 개념있는 남자친구라면 운동화를 챙겼었을 것이다. 아니면 여자친구가 똥고집을 부렸거나..... 둘 중 하나겠지.....




처음 가 본 남한산성 둘레길. 흙산이라 오르기도 편하다. 종종 가게 될 듯 싶다. 다음에는 친구랑 강동 6산 종주나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