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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 『정상화 개인전』2014.7.1. ~ 2014.7.30.

Sth Btwn Us 2014. 7. 6. 23:44

※ 본 포스팅에 게재한 정상화 작가의 모든 작품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상업적인 용도로 이미지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 갤러리 현대 신관, 두가헌 갤러리에서는 오는 7월 30일까지 정상화 개인전을 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장장 40 여년간의 작품 세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전시다.



Untitled 73-12-11
1973
Acrylics on Canvas
227.3 x 181.8cm


  정상화 화백는 일전에도 기획전을 통해서 많이 접한 작가였다. 그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몹시 특이하다. 캔버스 위에 5mm 두께의 고령토를 칠하고 마르면 캔버스를 일정한 패턴으로 접어서 균열을 만든다. 굳은 고령토가 알맞게 떨어지면 무수한 패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패턴들 위에 물감을 칠하고(Collage) 말려서 떼어내고(Décollage) 문지르고(Frottage), 칠하고 말리고 떼어내고 문지르고... 이렇게 수백번 반복을 한다. 이 과정에서 각 그림들은 저마다의 특징적인 색감, 질감을 부여받는다. 작가의 마음에 차는 그림이 나오면 비로소 그 행위를 멈춘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일 년이 넘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Untitled 85-2-5

1985

Acrylic on Canvas

130 x 130 cm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색 같지만 단색이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 - 고령토를 입혔다 뜯어내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하고 떼어내는 - 을 통해서 각각의 타일들은 독자적인 생명을 부여받는다. 어떤 것은 진하고, 어떤 것은 살짝 연하고, 어떤 것은 번들거리고, 어떤 것은 탁하다. 또 색면 타일 주위의 크랙들도 제각각이다. 또 이웃한 격자무늬들의 크기와 부피도 제각각이다. 미술평론가 이일의 말처럼 「모자이크」식 작은 네모꼴의 단위가 마치 나름의 내재적인 삶을 지닌 듯 은밀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그것은 보는 이의 감성에 따라 뉘앙스에 찬 미묘한 변화를 지닌다.


Untitled 85-3-1

1985

Acrylic on Canvas

130 x 130 cm



"보이지 않는 것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 내가 하는 작업이 그런 것이다" - 작가의 말



Untitled 09-07-24

2009

Acrylic on Canvas

162.2 x 130.3 cm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흙벽, 메마른 논같은 이미지도 오버랩된다. 

무수한 시간의 흔적 - 보이지 않는 - 들이 중첩되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Untitled 012-5-7

2012

Acrylic on Canvas

130 x 97 cm




Untitled 014-6

2014

Acrylic on Canvas

162.2 x 130.3 cm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순 없을 것 같아 미술평론가 이일씨의 평으로 마지막을 대신한다.

 "솔직히 말해서 정상화씨의 회화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칫 표정 없는 밋밋한 그림으로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그러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시간과 음미를 일단 거치고 나면 눈요기의 시각적 효과를 겨냥한 그림보다 비길 수 없이 깊은 숨결을 내뿜고 있는 것이 또한 그의 그림이다. 그의 회화는 네모꼴들이 빡빡하게 쌓여 지고 서로 인접하면서도 그 전체가 한데 어울려 무한히 확산해가는 은밀한 숨결의 공간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추가1.  1970년대 모더니즘운동으로 모노크롬(Monochrome)미술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모노크롬미술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서양에서처럼 다색화에 대한 반대개념으로서의 모노크롬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정신세계로 승화시켜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논리를 펼친 것이 특징이다. 작가들의 고뇌와 정신세계를 통해 전통적 미의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출한 한국적 모더니즘미술운동이다.

이 미술운동에 가담한 주요 화가는 박서보, 정창섭, 김창렬, 이우환, 하종현, 권영우, 김기린, 정상화, 윤형근, 윤명로 등이다. 이 운동은 한때 흰색에 주목하며 화단을 일색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민중미술가들로부터 관념적 심미주의로 치부되어 무가치한 미술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박서보의 '탈이미지(물질이나 자아의 해체)'에서 알 수 있듯이 '무작위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이 미술운동은 미적 자율성과 순수화의 의지(무목적성), 평면의 확대, 물질의 정신화 등을 중시한다. 박서보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나의 행위와 물성이 만나는 합일의 장이며 끊임없이 반복하여 그리다보면 내가 없어진다." 이렇게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는 미술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