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형, 유계영, 조성진
김소형 시집 ㅅㅜㅍ, 유계영 시집 온갖 것들의 낮, 조성진 쇼팽 콩쿨 실황 앨범을 샀다. 요즘 들어 시집에 손이 많이 가서 자주 보게 된다. 조성진 씨가 쇼팽 콩쿨 우승하는데 대한민국이 보태준 건 하나도 없지만 어쨌든 잘 된 일이다. 다만 이걸로 대한민국이 조성진 씨 발목 잡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애국심으로 한국 와서 공연하라는 그런 것 말이다. 딱히 사랑할 만큼 가치가 있는 나라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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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소메 맛
다 이야기해 봐
이야기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너는 이야기한다
나는 너를 믿지 않으니까
이야기한다
어떤 종(種)이건 하나의 저주가 내려온대
짐승과 침을 섞은 우리의 조상
그래서 변함없는 입술의 위치
다 이야기하면 알게 되겠지
낙타의 혀처럼 이국적인 농담
나는 다 이야기하고
너는 내 가죽 밑에 숨는다
귀가 큰 사람의 매력은
거짓말을 잘 감싸 주는 거래
너는 다 이야기하고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
유계영 시집 「온갖 것들의 낮」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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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ㅜㅍ
꿈속이라 믿었던 숲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음악이고 어디서나 음성이던 숲
저는 환한 잠을 따 광주리에 담았습니다
제게 잠을 먹이려는 어수룩한 무리가 있었고 다시
이 세계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천사들이 있었지
요 밤마다 불 피우며 땅속에다 숲을 두고 돌 속에다
숲을 두고 주머니에도 발가락 사이에도 두었습니다
이미 죽은 당신에게 총을 겨누는 병사들과 당신을
묻기위해 땅을 파는 인부들과 숨겨둔 숲을 찾아 도
끼질하는 벌목꾼을 피해 그리하여 숲은 만들어졌습
니다
숲을 두고 숲을 두고
그저 당신과 하루만 늙고 싶었습니다
빛이 주검이 되어 가라앉는 숲에서
나만 당신을 울리고 울고 싶었습니다
김소형 시집 「ㅅㅜㅍ」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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